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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베이스 일기장

모든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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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머릿속이 조용히 울렸다. 요즘 이상하리만큼, 내가 생각한 것들이 현실로 자꾸 흘러들어온다. 처음엔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게 단순한 자기암시나 긍정적인 생각의 힘을 넘어선 뭔가 더 깊은 원리라는 걸 느낀다.

며칠 전, 동시성 현상에 대한 영상을 봤다. 칼 융이 말한 “의미 있는 우연” — 서로 인과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 그게 마치 내가 요즘 겪는 일들과 너무 닮아 있었다.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 그 사람이 갑자기 연락을 한다거나, 마음속으로 ‘이 일이 잘 됐으면 좋겠다’라고 다짐한 순간에 마치 세상이 그 방향으로 조용히 움직이는 느낌. 예전 같았으면 그냥 ‘운이 좋았다’라고 넘겼을 텐데, 지금은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내가 보낸 파동과 세상이 응답하는 일종의 ‘질서’라는 걸 알겠다.

이 법칙을 믿기 시작하면서 내 시선이 바뀌었다. 모든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 내가 보내는 생각이 현실을 조직하고, 무의식이 그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는 걸 조금씩 체감한다. 사람의 의식이 단순히 뇌 안의 작용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는 데이비드 봄의 이론을 떠올리면, 우리가 하는 ‘생각’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큰 에너지인지 새삼 느껴진다.

양자물리학에서도 입자와 파동이 동시에 존재하고, 관찰하는 순간 형태가 결정된다고 한다. 즉, 관찰자 — 나의 인식이 현실을 바꾼다는 뜻이다. 이건 단순히 철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관찰자의 의식이 실험 결과를 바꿀 수 있다면, 우리가 매일 품는 생각과 감정 역시 현실의 형태를 바꾸는 ‘관찰 행위’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더는 막연하지 않게 들린다. 예를 들어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건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이미 ‘행복한 상태의 진동’을 내 안에 일으키는 시작점이다. 그 진동은 현실이라는 바다에 파문처럼 번져나가 결국 ‘행복한 상황’을 끌어당긴다. 반대로 불안, 의심, 결핍의 생각은 그와 같은 진동을 가진 상황을 불러온다. 우주는 결국 ‘진동의 일치’를 통해 반응하는 거니까.

이걸 체험한 이후로는 내 하루의 작은 생각조차도 무심코 흘려보내지 않게 됐다. 잠들기 전엔 “오늘 고마웠던 일 세 가지”를 떠올리고, 아침엔 “오늘 나는 좋은 기운을 나누는 사람”이라고 다짐한다. 처음엔 그냥 자기계발적인 습관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진짜로 내 하루가 달라졌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 대화의 흐름, 예상치 못한 기회들까지. 모두 내가 내보내는 진동과 연결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에도 더 귀 기울이게 됐다. 꿈속 장면이나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느껴보면, 그것들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내 안의 우주’가 보여주는 지도 같다. 이건 미신이 아니다. 인간의 뇌파는 전자기파를 방출하고,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그 진동수가 변한다는 건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간절히 그리고 믿는 것은, 실제로 물리적인 세계에 진동을 보내는 일이다.

예전엔 이런 말을 들으면 “너무 영적인 이야기잖아” 하고 웃었지만, 이제는 알겠다. 과학은 점점 더 미묘한 차원의 세계를 밝혀내고 있고, 철학은 그 깊이를 해석하려 애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인간의 ‘생각’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파동이고, 에너지이며, 현실을 구성하는 원리다.

결국 끌어당김의 법칙은 “마음먹은 대로 살아라”는 단순한 긍정의 주문이 아니라, 우주의 작동 원리와 맞닿은 과학적 사실이다.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떤 진동을 발산하느냐에 따라 현실은 그 모양을 달리한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이미 존재하고, 다만 내가 그 주파수에 맞춰 조율되기만 하면 된다.

오늘도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세상은 나에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된다.”
이 단 한 문장이 내 하루를 바꾸고, 내 세상을 새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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